몇 년 전에 '책, 쌓아만 둬도 똑똑해질까?'라는 제목의 칼럼을 읽은 적이 있다. 호주와 미국의 연구진이 진행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아이들이 책을 읽지 않아도 집에 책이 쌓여 있는 장면을 보는 것만으로도 지적 능력이 향상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집에 책이 많이 있는 것만으로도 교육 성취도에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고도 했다. 사회학 및 통계학 분야 국제학술지 ‘사회과학연구(Social Science Research)’에 실렸으니 얼렁뚱땅 진행된 연구도 아니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국제성인역량조사(PIAAC) 데이터 5년 치를 분석했다고 한다. 31개국 성인 남녀 16만 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 중 ‘아동기와 청소년기에 집에 책이 얼마나 있었는지’와 ‘시험 결과’를 비교해보니 이런 결과가 나왔다는 것이다.
글쎄...... 엄마들이 이런 연구 결과를 보아서일까? 수업을 위해 방문하는 집집마다 전집이 거실의 상석을 당당하게 차지하고 있다. 그 위용이 대단해서 어른인 나도 압도당할 지경인데, 전집 한번 째려보고 자신을 째려보는 엄마의 눈초리까지 감당하는 아이들은 얼마나 힘들까?
위 연구는 '책이 얼마나 많이 있는지' 에만 집중해서 보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책이 많은 집은 부모의 학력이 높을 가능성이 높고 학력이 높으면 교육열도 대개 높다. 그리고 평소에 책 읽는 모습을 자녀들에게 많이 보여주었을 것이다. 아이들은 부모의 모습을 보고 배운다. 전시되어 있는 책에 아이들이 접근하도록 돕는 역할은 당연히 부모가 하는 것이다. 그러니 책이 많은 것 보다 책을 사랑하는 부모의 태도와 습관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런 연구는 도대체 누가 시키는 것일까? 전집을 만드는 출판사에서 진행한 것은 아닐지 합리적인 의심이 든다. 책으로 벽을 꽉 채우고 싶게 만드는 연구 결과이기 때문이다. 전집으로 인테리어를 하면 우리 아이의 교육 성취도가 올라간다니 안 할 부모가 어디 있는가? 게다가 우린 세계 최고 교육 공화국, 대한민국에 살고 있다!
그런데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장식만 하고 있는 책은 장식의 역할만 하고 수명을 마친다. 수업을 하러 다녀보면 각 잡고 꽂혀있는 전집들이 몇 년 동안 순서 하나 바뀌지 않고 자리보전하고 있는 것을 늘 확인한다. 엄마들은 불안하고 두렵기 때문에 전집을 구매한다. 내 아이가 시기별로 습득해야 할 것들을 놓치지 않게 해야 한다는 강박이 늘 있는데, 각 연령 대 별로 읽어야 할 책들이 잘 구성된 전집은 매우 매력적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엄마들이 그렇게 구매한 것은 책이 아니라 인테리어 소품이 될 확률이 매우 높다.
다소 장황하게 전집을 디스했다. 이제 두려움을 접고 조금 부지런해지기를 선택하자. 엄마가 직접 고르는 책, 엄마가 먼저 읽어보고 감동받은 책의 힘은 매우 강력하다. 아이 손잡고 서점에 가서 함께 책을 고르고(물론 이게 힘들다. 만화책을 고를 것이기 때문에... 그래도 아이와 협상을 하자) 함께 읽어줘야 한다. 그 과정 없이 엄마가 일방적으로 큰돈 들여 장만해 놓은 책들은 아이들에겐 너무나 하기 싫은 숙제가 된다. 평생 친구가 되어야 할 책이 짐이 되다니... 너무 슬픈 일이다.
물론 좋은 전집도 많다. 예를 들면 시**, 비** 출판사에서 나온 클래식은 정말 훌륭하다. 그러나 이것도 통으로 들여놓지 않기를 추천한다. 아이가 한 권 읽어내면 그다음 책을 권하는 방식이 아이의 독서 성취감을 높여준다. 우리 아이들이 가졌던 전집은 전래 동화가 유일했다. 전래 동화는 대부분의 아이들이 거부감 없이 좋아하는 장르이다. 좋은 출판사에서 나온 전래 동화 전집은 소장하고 마르고 닳도록 읽히라고 권하고 싶다. 그 외에는 아이의 관심에 따라 또 엄마가 공부한 내용을 바탕으로 그때그때 구매해서 책장을 조금씩 채워 가보자. 알록달록, 키도 제각각, 뚱뚱한 책, 날씬한 책... 화려한 무지개 책장을 만들어 보는 거다. 아이들의 창의력이 날개를 달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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