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재미있는 책이 가장 좋은 책이다. 어른인 우리는 투자 대비 효율을 따지느라 같은 값이면 교훈과 지식도 얻었으면 좋겠지만 재미를 느끼지 못하면 아이들은 다시 그 책을 만지지도 않는다. 그러니 재미가 가장 우선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재미만' 있는 책을 아이에게 줄 수는 없다. 맛도 있으면서 영양도 높은 책을 골라내는 안목이 있어야 하니 엄마 노릇이 어렵다. 의외성을 가진 이야기가 재미있다. <친구의 전설>(이지은 글. 그림, 웅진주니어)이라는 멋진 책이 있다. 이젠 표지만 보아도 작가의 내공이 느껴지고 아이들이 좋아할지 아닐지 감이 오는데, 이 책은 보자마자 '이거네!' 했다. 호랑이와 민들레의 만남이라는 설정 자체가 매우 독특하고 그림이 정말 만화스러워 아이들이 좋아할 수밖에 없다. 어느 날 갑자기 호랑이에게 찾아와 꼬리에 뿌리를 내리고는 호랑이와 쏘울메이트가 된 민들레. 둘의 우정이야기가 가슴 뭉클하다. 등장 인물도 낯설고 벌어지는 사건도 예측을 벗어나는데 그 안에는 우정이라는 깊고 따뜻한 메시지가 있다. 이런 책이 재미에 교훈을 잘 녹여낸 '좋은 책'이다.
두 번째로 삶을 단순화시키는 책은 피하자. 동화는 아이들에게 익숙하고 편안한 이야기를 제공하지만, 때로는 그것이 삶의 복잡성을 과도하게 단순화시키는 경향이 있다. 이런 단순화된 이야기는 아이들이 삶을 가볍게 받아들이는 경향을 만들어낼 수 있다. 이것은 선과 악의 구분이 명확한 전래동화가 고학년 어린이들에게는 부적합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학년이 높아질수록, 아이들은 삶의 복잡성을 이해하고, 그것을 반영하는 창작동화를 선호하게 된다. 또한, 축약본이나 만화책으로 고전을 접하는 것은 그 작품의 본질적인 가치를 희석시키며, 아이들이 그 작품에서 깊은 생각을 할 기회를 박탈하게 된다. 예를 들어, '걸리버 여행기’의 어린이용 축약본이나 만화본은 걸리버가 경험한 신기하고 흥미진진한 모험 이야기에서 멈춘다. 원작에서 다루고 있는 인간 세상에 대한 혐오와 풍자 등을 어린이책에서 다룰 수 없으니 그렇게 원작과는 거리가 있는 이상한 책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이런 책을 읽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미리 예습시키는 차원에서 등장인물과 플롯이라도 접하게 하려는 것인지... 교사나 부모들은 아이들이 완역본을 읽을 수 있는 나이가 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축약본이나 만화책으로 고전을 접한 어린이들은 나중에 완역본을 읽지 않을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꼽고 싶은 좋은 책의 조건은 문학성이다. 어린이 책에 있어서 문학성이란 아이들에게 상상과 추론의 여백을 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미주알고주알 다 설명하는 책은 아이들이 끼어들 틈을 주지 않는다. <엄마 마중>은 이태준 선생님의 짧은 글에 김동성 작가님이 그림을 입혀 재탄생 시킨 작품인데 몇 번을 읽어도 읽을 때마다 새롭다. 이게 문학성이다. 아이가 엄마를 기다리는 장면은 흑백으로 그려져 있는데 아이의 상상을 그린 장면은 너무나 아름다운 색감의 수채화가 등장한다. 그 장면을 보며 아이들도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문학성이 뛰어난 책은 마지막 책장을 덮었을 때부터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된다. 독자의 이야기. 이렇게 여운이 긴 책들을 많이 읽은 아이의 삶은 풍요로워질 것이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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